서오릉( 명릉,대빈묘)사적제189호)
명릉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산 30-1
가는길은 서울시내에서 불광역 삼거리 좌회전-은평구 갈현동-서우릉 이정표-근처에 서삼능도 있습니다
명릉은숙중(조선19대)과 그의 제1계비 인현왕후 민씨,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 능입니다
숙종은1661년 (현종2년)8월15일 경덕궁 희상전에서 탄생하여1667년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1674년8월23일 창덕궁 인정전에서즉위 하였습니다.
숙중은 대동법 실시및 토지개혁종결 등 경제정책에 전력하였고,1721년 백두산 경계비의 건립으로 국경을확장 하였습니다.
1720년6월8일 창덕궁 융복전에서 춘추60세로 6남2녀를 남기고승하하여 같은해 10월21일인현왕후릉 옆에 묻혔습니다.
인현왕후 민씨는 여양부원군 민유중의딸로 1667년(숙종7년)왕비에 책봉되었으나 경종의 책봉 문제로 폐위되었다가 복위 되었습니다.
1701년(숙종27년)8월14일 창경궁 경춘전에서 춘추35세로소생없이 승하하여 그해 12월9일 이곳에 모셔졌습니다.
인원왕후 김씨는 경은부원군 김주신의 딸로 1687년9월29일 탄생하여 1704년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1757년(영조33년)3월26일
창덕궁 영모당에서 춘추 71세로 소생없이 승하하여 같은해 7월12일 왕릉의 서쪽에 떨어져 조성하였습니다.
명릉은 조선릉제의 분수령으로 상례보편과 산릉의기초를 이루었습니다.
1.석수및 석인의 치수를 실물에 가깝게 하였으며부장품 명기의 수량도 간소하게하였습니다.
2. 문인석의 미소와 무인석의늘어진 투구와 이마에새긴 투구의 파상선 등은 장릉(인조16대)의 석인상을 따르고 있습니다.
3, 8각의 장명등 옥개석을 4각형으로 개조 하였습니다
홍살문 멀리 정자각이 보입니다
신성한지역임을 아리리는 곳이라 ...
홍살문안에 창도입니다
정자각 동편모습 신도와 어도가 보입니다
안개낀날씨에 정자각과 비각사이에서 바라본 명릉 모습입니다
비각 모습
비석
릉 정면 모습
숙중때부터 릉 석물이 실물에 가깝게 개조되었다고합니다
동쪽에서 본 릉 모습입니다
곡장 에서 내려다본 모습입니다.
릉 서쪽에서 내려다본 모습(정자각이 보입니다)
대빈묘
대빈묘는 조선19대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의 묘소이다
서오릉 창릉과홍릉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아래 장희빈묘인 대빈묘가 있습니다.
사극과 영화나 연극으로 우리에게 단골 매뉴로 등장하는 , 유명세 보다는 초라 합니다.
인현왕후가 죽기를 기도했다는 것이 발각되41세에 숙종에 의해 사사되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묻혔던 희빈 장씨(1662-1701) 일생은 워낙 유명해서 ..
장희빈과 인현왕후에 대해서는 장희빈이 악독한 여자고 인현왕후 민씨가 어진 여자라라는 일방적 자대로 평가활 일만은 아닐듯...
당시 정치사항은 남인과 서인의 치열했던 당쟁과 그들을 이용해서 왕권을 다진 숙종의 노련한 정책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오죽했으면 예송논쟁으로 유명한 송시열이 왕과 맞먹을 정도의 권력을 남용했을 정도 이니..
서오릉( 명릉,대빈묘)사적제189호)
명릉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산 30-1
가는길은 서울시내에서 불광역 삼거리 좌회전-은평구 갈현동-서우릉 이정표-근처에 서삼능도 있습니다
명릉은숙중(조선19대)과 그의 제1계비 인현왕후 민씨,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 능입니다
숙종은1661년 (현종2년)8월15일 경덕궁 희상전에서 탄생하여1667년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1674년8월23일 창덕궁 인정전에서즉위 하였습니다.
숙중은 대동법 실시및 토지개혁종결 등 경제정책에 전력하였고,1721년 백두산 경계비의 건립으로 국경을확장 하였습니다.
1720년6월8일 창덕궁 융복전에서 춘추60세로 6남2녀를 남기고승하하여 같은해 10월21일인현왕후릉 옆에 묻혔습니다.
인현왕후 민씨는 여양부원군 민유중의딸로 1667년(숙종7년)왕비에 책봉되었으나 경종의 책봉 문제로 폐위되었다가 복위 되었습니다.
1701년(숙종27년)8월14일 창경궁 경춘전에서 춘추35세로소생없이 승하하여 그해 12월9일 이곳에 모셔졌습니다.
인원왕후 김씨는 경은부원군 김주신의 딸로 1687년9월29일 탄생하여 1704년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1757년(영조33년)3월26일
창덕궁 영모당에서 춘추 71세로 소생없이 승하하여 같은해 7월12일 왕릉의 서쪽에 떨어져 조성하였습니다.
명릉은 조선릉제의 분수령으로 상례보편과 산릉의기초를 이루었습니다.
1.석수및 석인의 치수를 실물에 가깝게 하였으며부장품 명기의 수량도 간소하게하였습니다.
2. 문인석의 미소와 무인석의늘어진 투구와 이마에새긴 투구의 파상선 등은 장릉(인조16대)의 석인상을 따르고 있습니다.
3, 8각의 장명등 옥개석을 4각형으로 개조 하였습니다
홍살문 멀리 정자각이 보입니다
신성한지역임을 아리리는 곳이라 ...
홍살문안에 창도입니다
정자각 동편모습 신도와 어도가 보입니다
안개낀날씨에 정자각과 비각사이에서 바라본 명릉 모습입니다
비각 모습
비석
릉 정면 모습
서오릉내 있는 대빈묘 정면 모습
숙종은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는데 숙종14년 궁녀 장소의에게서 완자 융(경종)을 낳았습니다.
다음해 융을 왕자로 책봉하고 장소의 에게 희빈이라는 풍계를 내렸습니다.
그후 인현왕후 민씨를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하고 장희빈을 왕비로 책봉하였으나 숙종은 이를 후회하고
인현왕후를 복위하고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렸습니다
장희빈묘는 경기도 광주에 있었는데1969년6월에 이곳으로 옮겨져 왔다고 합니다.
곡장 서쪽에서 본 대빈묘
곡장위 소나무숲에서 내려다 본 모습
장명등
옥산부 대빈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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