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王陵石物)

푹군연산군 ?

노을길 2009. 8. 3.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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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묘 (사적362호)

 

조선왕조(제10대)임금, 연산군(1476-1506)과  왕비인 거창군부인 신씨(1472-1537)가 안장된 묘이다

 

연산군은 선종의 큰아들로 태어나 19세에 임금이 되었다

젊은 임금이 었지만 붓글씨를 잘쓰고 시를 잘지어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두번이나 사화를 일으켜 조정을 어지럽게 하자 산하들은 왕위를 박탈하여 연산군으로 강등시키고 강화도로 추방.

동생인 중종(1506)을 임금으로 추대하였으며,그해 연산군은 병이 들어 강화도에서 일생을 마쳤다.

열병으로 죽은것으로 되어 있어나 젊은 연산군이 열병에 죽을리 없었며,일설에는 독살되었다고 한다.

 

 연산군과왕비신씨묘

 

 연산군묘 (비석, 상석 장명등)

 

 왕비신씨 묘 의 장명등, 상석 ,비석,  비석 아래쪽에서 물기가 젖어있어 신씨의 눈물이 아닌가한다.

 

 

 문인석상

 

 연산군 묘 비석

 

 왕비 신씨 비석

 

 장명등

 

 망주석은 무덤의 길잡이

 연산군묘 옆에서본 문,무인석상과 장명등

 

 

 년후 부인 신씨의 요청으로 이곳으로 옮겼으며(1513) 묘의 시설은 왕자의 묘재에 따라 혼유석,장명등,문인석,제실이 갖추져있다.

왕릉 보다는 간소하나 조선시대의 전기 능묘 석물의 조형이 잘 남아 있다

 

 뒷쪽곡장에서 바라본 연산군묘

 

14년간 왕위에 있던 연산군이 사치와 향락을 일삼은 것은 정치를 잘했던 통치자는 아니었다

다만 모정에 굶주린  정신장애자로 강조돼 공정하게 평가를 못밭은 것이다.

중종반정이후 조선의 왕권은 약해졌고  쿠테타에 맛들인 신권들이 왕을 독살하거나 갈아치워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 하였다.

 

 

 연산군 장인인 궁인조씨 묘와 비석  문인석

 

 

연산군 사위와 딸의 묘

묘역 아래에는 궁인조씨 및 사위와 딸의 무덤이다.

 

 

연산군 부인 거창군부인 신씨의 요청에 따라 강화도에서 이곳으로 옮겨온지 500년, 

연산군 묘역 아래에 있는 800년된 이 은행나무는 역사를 알고 있을 것이다.

 

 

14년간 왕위에 있던 연산군이 사치와 향락을 일삼은 것은 정치를 잘했던 통치자는 아니었다

다만 모정에 집착한  정신장애자로 인정돼 역사의 공정한 평가를 못받은 것이다.

중정반정이후 조선의 왕권은 약해졌고  쿠테타에 맛들인 신권들이 왕을 독살하거나 갈아치워 자신들의 권력을유지 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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