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王陵石物)

동구릉(목릉)

노을길 2009. 7. 25.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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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구릉(묵릉)

 

왕 에게가다

 

목릉

 

목릉은 선조(14)와왕비의인왕후,계비 인목왕후의능이다.

 

임진왜란,정유재란을 격은 선조(1552-1608)는 정후복구에 힘쓰서나  거즙되는 흉년과 정치불안으로

큰 실적을 거두지못했다.

선조는 덕흥대원군(중종의아들) 하동부대부인 정씨의 3남으로 명종7년 (1552)11월11일 탄생하여 1567 년 즉위하였다.,

1608년 2월토하루에경운궁(덕수궁)에서 14남 11녀를 남기고춘추 57세로 승하 여 이곳에  묻혔다.

 

 

 

 입구에는홍살문과 창도가 그대로 있고 멀리 장자각과  비각이 멀리 보닝다.

 

 정자각과 비각

 정자각

 

 

임진왜란,정유재란을 격은 선조(1552-1608)는 정후복구에 힘쓰서나  거즙되는 흉년과 정치불안으로큰 실적을 거두지못했다.

선조는 덕흥대원군(중종의아들) 하동부대부인 정씨의 3남으로 명종7년 (1552)11월11일 탄생하여 1567 년 즉위하였다.,

1608년 2월토하루에경운궁(덕수궁)에서 14남 11녀를 남기고춘추 57세로 승하 여 이곳에  묻혔다.

 

 

 

 

 

 

 

 망주석

 문인석

 무인석

 난각석

 곡장

 

의인왕후(1555-1600)는1569년(선조2)왕비에책봉되고 가레를 올렸으나 선조와의 사이에 자녀을 두지못했다.

선조33년 6월27일에 춭추 46세로 승하, 같은해 12월22일 유릉이라하였다가 1630년 왕릉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목릉이라하였다.

 

 

 장명등

 난각석

 

 

 

 

 

 

인목왕후( 김씨(1584-1632) 1602년에 왕비에 책봉되어1606년 유일한적통인 영창대군을 낳았으나 공해군의 손에 아들을 잃는다.

인목대비는 성궁에 유폐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복위되어 대왕대비에  오른다.

인조10년(1632) 6월28일에 인현궁 홍명전에서 춘추 46세로 승하하여, 같은해 목릉 왼쪽에 모셔졌다.

의인왕후의 장명등과망주석의 대석에는 세로운 화문(연화,모란)을 새겨새겼다.

가정자각 터가  현재에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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