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王陵石物)

왕릉에가다(동구릉 조선제16대인조의 휘릉)

노을길 2016. 1. 7.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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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동구릉 조선제16대인조의계비 휘릉)

 

 

동구릉(인조의계비 장렬왕후 휘릉 사적제193호)

 

 

조선왕조 제16대인조의 계비장렬왕후 (조씨 1624-1688)의 능이다

장렬왕후(1624-1688)는1649년에 인조가 승하하자 26세에 대비가 되었다.

효종,현종,숙종,4대이까지왕실의어른으로  지냈느나 인조와의 사이에자녀가 없었다.

1659년 효종사망과 1674년 효종의 비인 인선왕후 장 씨가 사망 후 대왕대비인 장렬왕후의  정치적 쟁점이 되다.

여기에는 당대의 양대 권력 축인 남인과 서인 간의 세력 싸움이 작용한다.

양쪽의 대표적인 인물은 허목(1595~1682)과 송시열(1607~1689)이다.

허목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그림과 글씨에 뛰어나 동방의 1인자라는 찬사를 받았던 인물이다.

1657년 환갑이 넘은 나이에 벼슬에 올랐으나 남인의 영수로서 서인과 예송 논쟁의 핵심이 되었다.

효종의 스승인 송시열은 효종이 왕이 되자 곧바로 이조판서가 되어 당대의 두 사람이 모두 한 조정에 일하게 된다.

 

장령왕후의 사후 이 시기이 극심했던 봉당정치는 복상문제를 놓고 다시 치열하게 대립한다.

휘릉은 단릉으로 배면의 담은 약간씩 높이가 다른나직한 형태로 자연 경관에어울리게 되어있다.

문.무석인,석상 등 석물은 1684년 조영된 숭릉의 것고 비숫하다.

정자각은 맞배지붕으로 양옆에 익랑을 붙인 것이 아주 특이한다,

 

 

 

홍살문

 정자각은 2009년 보수공사하는 이미지이다

 

 

정자각은 맞배지붕으로 양옆에 익랑을 붙인 것이 아주 특이한다,

 

 

2009 보수공사 중 정자각

 

 

2016 1월 정자각 모습

 

 

문.무석인,석상 등 석물은 1684년 조영된 숭릉의 것고 비숫하다.

 

 

봉분 아랫단의 문인석과 무인석은 높이가 2.4미터에 이르는데 문인석은 이목구비가 크고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문.무석인,석상 등 석물은 1684년 조영된 숭릉의 것고 비숫하다.

 

 

2016년겨울과 2009년 여름 릉상모습

휘릉은 병풍석이 없고 십이지 신상을 새겨 방위를 표시한 12칸의 난간석을 둘렀다. 봉분 뒤에는 3면의 곡장이 있다.

 

 

문.무석인,석상 등 석물은 1684년 조영된 숭릉의 것고 비숫하다.

 

 

무인석은 눈과 코가 크고 입술이 두꺼워 우직하고 우람한 무인의 모습

 

 

비각

 

인조대왕걔바 휘릉비문

 

 

휘릉은 병풍석이 없고 십이지신상을 새긴 12칸의 난간석을 둘렀다.

 

 

봉분 뒤에는 3면의 곡장이 있다.

 

 

수복방 빈터

 

 

임금보다 더 높은 관리자

 

 

비각에서 바라본 홍살문 공간

 

 

2016년 홍살문

 

 

왕에게 전기차로 점검

 

 

정자각공간에서 본 1009년 홍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