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宗廟,세계문화유산 )
정전
종묘는 역대 왕과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국가 최고의 사당이다. 조선의 태조가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하고 나서 바로 공사를 시작해 1395년 경북궁보다 먼저 완공한다. 궁궐의 외쪽인 동쪽에 종묘를 오른쪽인 서쪽에 사직단을 두어,고대중국의 도성 계획 원칙에 따라 경북궁 왼쪽인 이곳에 터를 잡았다. 이후 왕조가 이어져 봉안해야할 신위가 늘어남에 따라 몇차레 건물의 규모가 커지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왕이나 왕비가 승하하면 궁궐에서 삼년장을 치런 후 그 신주를 종묘로 옮겨 모신다. 정전에는 공덕이 뛰어난 임금들을 모셨고 영녕전에는 태조의 4대조와 죽은 뒤에 왕으로 추준되었거나 정전에서 신주를 옮겨온 임금들을 모셨다. 정전의 신설 19칸에는 태조를 비롯 왕과왕비의신위49위를영녕전 신위 16칸에는 신위34위를 모셔두었다.
영녕전
영녕전은 정전의 신위를 옯겨 모시기 위해 1421년 세로 지은 별묘로 건물 이름은 왕가의 조상과 자손이 길이 편안하라는 뜻을 담고있다. 시설과 공간 형식은 정전과 같지만 정전규모보다 작고 친밀하게 지어졌고 정전 일원과 유사하게 2중으로 된 월대 주위에 담장을 둘렀다. 동서남에 문을두고 원래 6칸이었으나 여러차레 좌우로 협실을 늘리면서 현재 신실은 모두 16칸이다. 가운데 4칸은 ㅌ조의 4대조를 모신곳으로 좌우 협실보다 지붕이 높고 동쪽이 제사도구를 했다. 제기고를 서남쪽 바깥에 제례악을 준비하는 소왁공청을 두고 관리 했다.
외대문
1920년외대문
외대문 우측답벼락에 매표소가 자리잡다
탐방객과함께
종묘는 역대 왕과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국가 최고의 사당이다. 왕조가 이어져 봉안해야할 신위가 늘어남에 따라 몇차레 건물의 규모가 커지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탐방객들
정전에는 공덕이 뛰어난 임금들을 모셨고 영녕전에는 태조의 4대조와 죽은 뒤에 왕으로 추준되었거나 정전에서 신주를 옮겨온 임금들을 모셨다. 정전의 신설 19칸에는 태조를 비롯 왕과왕비의신위49위를영녕전 신위 16칸에는 신위34위를 모셔두었다
정전에는 공덕이 뛰어난 임금들을 모셨고 영녕전에는 태조의 4대조와 죽은 뒤에 왕으로 추준되었거나 정전에서 신주를 옮겨온 임금들을 모셨다. 정전의 신설 19칸에는 태조를 비롯 왕과왕비의신위49위를영녕전 신위 16칸에는 신위34위를 모셔두었다.
정전
왕위에서 쫓겨난연산군과 광해군은 모시지 않았다. 종묘의 재레는 국가의 가장 큰 제사로 정전에서 1년에 5번 영녕전에서는 1년에 2번 지냈고 왕이 주관한다. 종묘제례에는 왕세자와 문무백관이 참여하며 음악,노래,툼이 일체화한 종묘 제례악에 맞추어 진행하였다. 현재 종묘제례에는 면년 오월 첫째 일요일에 행하고 제사 외에도 중모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일을 알리거나 기원하는 의식을 하기도 했다.
종묘의 모든 건물은 장색과 기교를 배제하여 단순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해설사의 해설에 뒤담아 든는 탐방객들
현재 종묘제례에는 면년 오월 첫째 일요일에 행하고 제사 외에도 중모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일을 알리거나 기원하는 의식을 하기도 했다.
배위
정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4대조(목조,익조,도조,환조)신위를 모시던 곳이었으나 이 후 당시 재위하던 왕의 4대조(고조,조부,부)이다. 조선의 역대왕가운데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 지내던 곳이다.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종묘제례및 종묘제례악 은 2001년 인류 구전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돼된다,
영녕전
영녕전 공간
정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4대조(목조,익조,도조,환조)신위를 모시던 곳이었으나 이 후 당시 재위하던 왕의 4대조(고조,조부,부)이다. 조선의 역대왕가운데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 지내던 곳이다. 정전에는 서쪽 제1실에서부터 19분 왕과 왕비의 신주를 각 칸 1실로 하여 19개의 방에 모시고 있다.
건물은 칸마다 장식을 하지 않은 매우 단순한 구조이지만 19칸이 옆으로 이어져 우리나라 단일건물로는 가장 긴 건물로 알려져 있다. 홑처마에 지붕은 사람인 자 모양의 맞배지붕 건물이고 기둥은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홀림 형태의 둥근기둥이고 정남쪽에 3칸의 정문이 있다
영녕전 영녕전은 정전의 신위를 옯겨 모시기 위해 1421년 세로 지은 별묘로 건물 이름은 왕가의 조상과 자손이 길이 편안하라는 뜻을 담고있다. 시설과 공간 형식은 정전과 같지만 정전규모보다 작고 친밀하게 지어졌고 정전 일원과 유사하게 2중으로 된 월대 주위에 담장을 둘렀다. 동서남에 문을두고 원래 6칸이었으나 여러차레 좌우로 협실을 늘리면서 현재 신실은 모두 16칸이다. 가운데 4칸은 ㅌ조의 4대조를 모신곳으로 좌우 협실보다 지붕이 높고 동쪽이 제사도구를 했다. 제기고를 서남쪽 바깥에 제례악을 준비하는 소왁공청을 두고 관리 했다.
중국과 베트남과 달리한국의 종묘는 건축물과 더불어 제례와 제례악의 본무습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종묘제례및 종묘제례악 은 2001년 인류 구전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돼된다,
악공청
영녕전 담벼락
입구로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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