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遺産(遺物·遺蹟)

추색 (청와대와신무문)

노을길 2015. 11. 3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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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북문 신무문과청와대일원
 
 
 
궁성의 북문으로 북쪽궁성이 만들어진 다음 세종 15년인 1433년  처음세워진 경복궁 북쪽의 문이다.신무문이라고 부르게 된것은 성종 6년(1475)인데 이때만 해도 신무문 부근은 인적이 뜸했다고 한다.후에 신하들의 공훈을 기록한 회맹단이 생겨 왕이 공신들의 충성을 다짐하는 모임이 있는 회맹제 때 이 문을 사용하였다.신무문은 크기가 건춘문과 같고  이문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때 함께 건립 된 것이라고 전한다북악산의 노기를 막기 위해 늘 닫아 두었다고 하며 현판은 이현직(李顯稷)이 썼다고 한다5.16군사 혁명으로 경비사단이 주둔해 비공개되었으나  지금은 일반에게 공개되어 경복궁의 북문으로 알리고 있다. 


 

 

 

 

 

 

 청와대

 

 

신무문에서 청와대는 원래 경복궁 후원으로 왕과 신하들이 활쏘기나 과거시험 장소로 쓰이던 곳이다.일제가 조선총독부를 남산에서 경복궁으로 옮기 지어면서 총독이 살집을 경복궁 후원에 지었다.건국 후 대통령 집무실 경무대에서 다시 헐고 지어 청가와로 지붕을 덮었다고 청와대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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