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遺産(遺物·遺蹟)

역사가있는곳 창덕궁낙선재

노을길 2015. 12. 1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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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있는곳 창덕궁 (昌德宮)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이고 인정은 어진 정치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하례식 등 국가 행사의 중요건물이다,

광해군 때 중건된 이후 순조 3년(1803) 화재로 다시 재건하였으며 철종 8년 (1857)보수공사하고 지금에 이런다.

정면 5칸,측면 4칸의 중층 팔작지붕 다포(多包)집이며 순조 때 용마루에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배꽃문양 다섯을 새겼다.

역대 왕들이 이곳에서 정무를 보았고 조선왕조의 법전으로 인정문과  회랑으로 둘러 싸여 일곽을 이룬다.

 

인정전

진선문

 

인정전 정문

 

 

 

낙선재

 

 

낙선재공간

 

 

창덕궁내에 있는 낙선재는 정면 6칸 측변 2칸의 단층 팔작 기와지붕에 누 마루가 있는 17칸 반의 규모이다.

장대석 위에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모기둥이며 기둥 머리에 대들보를 걸었으며 익공을 끼웠다.

누 마루 밑에는  아궁이를 내기 위해 단을 높혔고 아궁이의 벽에는 작은 돌들을 이리저리 붙여 놓았다.

원래 이곳은 상중에 왕후들이 소복차림으로 기거하던 곳이라  단청도 하지 않았다.

1963년 일본에서 돌아온 영친왕 이은,이방자 비가 이곳에서 거주하다 돌아 가셨다.

 

 

선재정문

 

현종은 명헌왕후가 후사가 없자 1847년 김재청의 딸을 경빈으로 맞아 들여 중화당 동쪽에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등을 짓는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겸 사랑채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수렵청정이 끝난 순원왕후의 모신곳이다.

현종의 뜻에 따라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않고 소박한 외형을 지냈고 창살무늬와상량저정의 건축양식이 청나라 양식을 볼수있다

 

이방자여사가 마지막까지 기거하던 곳

 

낙선재후원

 

낙선재 후원

 

낙선재내부

낙선재

 

낙선재 후원

 

낙선재 일원

낙선재정원

 

낙선재를 나오면 바로 후원으로 넘어가는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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