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宮博物館

신무문과청와대일원 만추

노을길 2017. 12. 28. 21:41
728x90
반응형






경복궁 신무문과청와대일원   만추


 


경복궁 북문으로 세종 15년인 1433년  처음세워진 경복궁 북쪽의 문이다.신무문이라 부른것은 성종 6년(1475)이며 이때는 신무문 일원은 인적이 뜸했다.공훈을 기록한 회맹단이 생겨 왕이 공신들의 충성모임인 회맹제 때 문을 사용한다.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때 함께 건립 된 것이라고 전한다북악산의 노기를 막기 위해 닫아 두었고 현판은 이현직(李顯稷)이 썼다.군사혁명 후 경비사단이 주둔해 비공개로 있다 공개되 경복궁의 북문으로 알린다.

20171228 맑음

신무문공훈을 기록한 회맹단이 생겨 왕이 공신들의 충성모임인 회맹제 때 문을 사용했다.



신무문의 천장 공포이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때 함께 건립 된 것이라고 전한다




북악산의 노기를 막기 위해 닫아 두었고 현판은 이현직(李顯稷)이 썼다.


군사혁명 후 경비사단이 주둔해 비공개로 있다 공개되 경복궁의 북문으로 알린다.

 청와대
 
신무문앞  청와대는 경복궁 후원으로 왕과 신하들이 활쏘기나 과거시험 쓰이던 곳이다.일제가 조선총독부를 남산에서 경복궁으로 옮기면서 총독 살집을 경복궁 후원에 지었다.정부수립후 대통령 집무실 경무대를  헐고 새로지어 청기와를 올려 청와대라 부른다.



회의실·접견실·주거실과 2층 본관과 경호실,·비서실,영빈관 등 부속건물이 있다,
 정원과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후원 및 연못 등의 미관을 갖추고 있다.




신무문에서 청와대 너머 북악산이 보인다.
정부수립후 이승만(李承晩)제1공화국 대통령 관저명 경무대(景武臺)불렀다.
 제2공화국 대통령 윤보선(尹潽善)이 선출되어 입주하면서 청와대로 개명한다.






청와대 앞뜰을 관람하는 참방객들
대리석으로 된 본관 건물이 청기와로
올리면서 청와대로 유래한다.




청와대 경비및위병초소




신무일원 담장에 곱게 물내린단풍


















신무문일원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담장너머 신무문이있고 다음에 청와대가 있다.


집옥재 팔우정



창덕궁에 있던 집옥재를 협길당과 함께 1891년 건청궁에 옮겨와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장으로 사용한다.
집옥재는 양 옆면을 벽돌로 쌓고 내부를 중2층으로 만들었으며 ,팔우정은 팔각형의 2층 정자이다.
복도를 통해 하나의 내부를 연결 되어 있으며 궐내에서도 이국적인 권역이다.




건청궁과 집옥재 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