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山島嶼

소양호의 옥석같은 청평사 다녀오다

노을길 2014. 1. 22. 00:01
728x90
반응형

 

 

청평사가는길

 

 

맑지만 안개가 자욱한 새벽길로 일행이 기다리는 상봉역에 도착 9시에 출발하는 경춘선 전철로 10시 조금지나 남춘천역에 도착한다.

다시 시내 버스로 소양댐 정상에 도착한것은 11시 지난 후,선착장으로 이동 11시 30분 출발하는 배에 뱔권한다

소양호 정상 선착장에서 배을 타고 도착한 선착장에서 우리들은 약 1km 거리에 있는 계곡길을 따라 청평사를 찾아간다.

 

청평사는 오봉산 779m의 오봉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고려 광종(973)에 영현선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페사 되었던 절이 다시 세워진 것은 선종(1089)에 이자현이 관직을 버리고 이곳에 들어와 문수원이라 이름짓고 선을 즐겼다.

이때부터 주변 호랑이외이리가 사라지 평화롭게 되었다하여 청평사라 부르게 된다.

보물 제 164호인 회전문을 지나면 이자현이 사다리꼴 석축을 쌓고 정원을 만들었다

계곡물을 꿀어들여와 연못을 만들어 오봉산이 비치게 한 고려정원,영지,경네에 남아있다.

 

회전문은 흙담을 만들지 않고 창살을 달아 만든 불교의  윤회사상을 상징한다.

상사뱀이 붙어 고생하던 원나라 공주가 이곳에 와 기도 후 나은 것에 감사,아버지인 순제가 만들었다는 공주탑도 볼수 있다.

청평사를 오르는 중간에 아홉가지 소리를 낸다는 구성폭포가 있고 수려한 계곡을 감상하며 겨울산행을 즐길수 있다.

춘천가는 전철 풍경, 축제가 많은 겨울철이라 청평,가평을 지나면서 한산한 보습이다

 

 

 소양댐 정상에 있는 위령탑이며 이곳이 버스 종점이다

 

소양호댐 선착장 모습이다. 보기에는 조용한것 처럼 보이지만 ..

 

매표소에서 발권한다. 왕복 배삵은, 6000원

 

내가 구입한 왕복 승선권이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검표원에게 바람이 불고 있으니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이 소형 여객선으로 우리들은 청평사와 오봉산 방향으로 간다

 

목적지 부근 가까이 청평사 선착장이 보인다.

 

도착한 다음 타고온 배로 배경삼아 오봉산과 청평사 가는길을 담아본다

 

선착장을 나와 타고온 배길을 조명해본다

 

타고온 소형 여객선은 수운1호라고 인증샷을 날린다.

 

함께 하선한  오봉산과 청평사 탐방객들

 

한참 후 길게 늘어선 탐방객들을 조명해 본다.

 

청평선착장에서 멀리 소양댐 정상 부근의 산맥들..

 

청평사로 오르는 청평사 계곡 사이 청평교가 보인다

 

산행 뒤풀이는 먹거리가 관심대상

 

 

청평교를 지나 계곡길로 접어들고 있다

 

청평교에서 반대로 소양호 산하를 조명해 본다

 

춘천시 신복면 산하

 

어제 내린 눈으로 임도가 미끄럽다

 

청평사 일원 산야

 

청평사 일주문인가?매표소가 나온다

 

경로는 무료,일반인은 2,000원이다

 

공주설화

청평사에는 당나라 공주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거북바위

거북바위는 자연암석으로 예전부터 거북이가 물을 바라보게 되면 청평사가 크게 융성할것이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한다.

 

 

 진락공 이자현 부도

전락공은 이자현이 죽고난 후 임금이 내려준 이자현의 시호이다.

 

 전락공은 이자현이 죽고난 후 임금이 내려준 이자현의 시호이다.

 

 이 부도는 청평사를 세번쩨 중창한 고려시대 이자현의 부도로 알려져 있다.

 

 이 후 만들어진 양식으로 볼 때 1700년 이후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자현의 생존시기와 600년의 시간 차이간 나기 때문에 다른 스님의 부도라는 설도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자현의 유골은 질그릇에 만든 함에 담아 청평사 북쪽의 청평식암 근처의 바위 틈에 안치 되었다고 한다

 

 

 청평사를 알리는 안내문

 

 영지 명문 바위

이 바위의 웟면에 한문으로 지은 시가 새겨져 있다.옮겨 적으면 딩,ㅁ거ㅣ 깉디.

마음이 일어나면 모든것들이 생겨나고

마은이 사라지면 모든 것들이 사라지네.

이와 같이 모든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곳곳이 모두 극락세계로 구나

이시는 스님이깨우침을 얻고 나서 지은 시라는 뜻의 오도송이라고 알려져 있다.

 

 영지

이 연못은 고려시대 이자현이 조성한 것으로 조선초기 김시습의 한시에도 나타나 있다.

영지는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의 연못으로 부용봉에 있던 견성암이 연못에 비친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청평사 입구

주변이 청평사 일원이다

 

청평사 회전문

 

회전문은 흙담을 만들지 않고 창살을 달아 만든 불교의  윤회사상을 상징한다.

 

 청평사 문수사 시장경비

이비에는 고려 말 원나라에서 청평사에 보내온 대장경과 사찰 후원금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다.

당대의 최고의 명필인 문화시중 행촌 이암이 비문을 썻으나 1800년 대에 훼손되어 현재는 비석을 세울떼 받침돌로 썼던 비좌의 비문의 탁본이 전하고 있다.

 

청평사 회전문 보물 제164호

청평사의 대문으로 1555년경에 보우대사가 건립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가운데 칸을 출입문으로 하고양 쪽한깐씩은사천왕상을 조각하여 세우거나 그림을 그려서 걸도록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회전문의 본래 뜻은불교의 경전을 두었던 윤장대를 돌린다는 의미에서 비롯된것으로 추정된다.

 

청평사는 오봉산 779m의 오봉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고려 광종(973)에 영현선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페사 되었던 절이 다시 세워진 것은 선종(1089)에 이자현이 관직을 버리고 이곳에 들어와 문수원이라 이름짓고 선을 즐겼다 한다

 

 가운데 칸을 출입문으로 하고양 쪽한깐씩은사천왕상을 조각하여 세우거나 그림을 그려서 걸도록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청평사 대웅전

 

 

 

 

 

 

회전문에는 공주에게 붙었던 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회전문의 본래 뜻은불교의 경전을 두었던 윤장대를 돌린다는 의미에서 비롯된것으로 추정된다.

 

회전문 보물 제16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