遺産·書畫

외규장각의궤 145년만의 귀환(2)

노을길 2011. 8. 1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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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규장각의궤 145년만의 귀환(2)

 

145년반에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기간은 7월19일-9월18일

 

서울시 용산구용산동6가168-6 지하철 4호선 중앙선 이촌역 2번출구로 나가면 바로 박물관을 가실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을개최하고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가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의 종요성과 그 내용을 알리고 무엇보다도

의궤 귀환의 기쁨을국민들과 함께하는데 그 의미를 두고 있다.

조선왕조 의궤는 2007년 뉴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 이미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기록문화의 꽃입니다

 

 

외규장각 의궤 반환일지

1866,10월..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에서 외규장각 의궤 약탈

1975년..재불학자 박병선박사 국립도서관에서 중국도서로 분류된 외규장각의궤 처음 발견

1991년11월..한국 외무부 프랑스 외무성에 공식 반환요청.

 

 

1993년 9월..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 (상)1권 전달하며 반환약속.

1999년..서울 및 파리에서 전문가 협상진행

2000년10월19일.. 외규장각 도서와 국내 고문서의 등가교환 추진

2002년..전문가 실사단 1,2차 현지조사

2003년4월15일..외교통상부 실사단 파리국립도서관 소장 외규장각 우ㅢ궤 조사연구 발간

2010년11월12일..한불 정상 합의 공식 발표

2011년3월16일..국립중앙박물관 프랑스국립도서관 약정 서명

2011년5월11일...드디어 외규장각 위궤 297책 귀환 완료.

가장 먼저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1822년 12월부터 1823년 3월까지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현목수빈 박씨의 묘소,위경원 조성 사업에 관해 기록한 의궤이다.

상.하로 만들어진 이 위궤의 상권은 1993년9월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직접 가지고와 전달하였다.

하권은 2011년에 외규장각 위궤 296권과 함께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영조 왕세손 책봉의궤

 

 

 옥도장 보관함

 정조 왕세손 책봉을 위한 글 의궤

 

 순원왕후에게 존호를 올린 의궤

 

 순원왕후에게 존호를 올린 의식 의궤

 

 

숙종의 일생과의궤

 

숙종(조손19대임금)은 현종과 영성왕후의 장남으로 7세에 왕세자가 되었고 14세에 왕위에 오른다.

숙종의 등극은 첫쩨 왕비가 낳은 첫쩨아들이 왕위를 승계한 예였기에 처음부터 왕권의 정통성을 확보 수 있었다.

거러나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는봉당간에 왕위 계승 및학문적 견해에 대한 의견이  대립하여  긴장감을 넘치게 하였다.

이에 숙종은 집권당을 한번에 바꾸는 이른바 환국으로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왕의 권위와 힘을 발휘하였다.

숙종은 45년 10개월의 재위 기간 동안 약 65건의 위궤를 제작하였으며,1720년 6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숙종과 인경왕후의 혼례의궤

 

 현빈 조씨의 무덤 조성 의궤

사도세자의 장례행렬의궤

 의소세손의 장례의궤

 

 의소세손의 무덤의의 부장품

정조실록 10년 윤 7월10일 기사 중(1766년)

문효세자를 효창묘에 장사지냈다.임금이 친히 신주를 쓰고 초우제를 지내고 라룻밤을 지냈다.

문효세자의 장례의궤

문효세자의 무덤 부장품

 

 숙종의 장례

 

                                               숙종의 재궁(관)을 실은 대여를 100명의 가마꾼이 메고 장지로 향하는 발인 반차도리다.

휘장안에 곡을 전담하는 궁녀 20명이 따르고 있는데 숙종은 제위 46년(1720)60세를 일기로 경덕궁 융복전에서 승하한다.

 

 숙종의 숭하 후 올린 금 도장

 

 숙종 숭하 후 올린 옥책

숙종의 승하 후 숙종의 묘호와 시호를 올리며 금보와 함께 제작한 옥잭이라 한다

 

 수빈 박씨의 신주를 현사궁의 별묘에 모심

 

 숙종의 초상을  제작

 

 선왕에게 시호를 올림

 

 명성왕후의 신주를 종묘에 모심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의 침략과저을 묘사한 주간지(화보 1867년)

 

 외규장각의 의궤를 기록한 여행잡지

 

외규장각 위궤에 대한 최초의 한글 목록집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1866년 프랑스는 천주교 탄압사건을 구실로 병인양요를 일으키고 강화도를 점령하였다.

                                            조선군의 분전으로 수세에 몰린 프랑스군은 대량의 은괴와 외구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의궤를 비롯 189종 340여책 등,  

               약탈하여 강화도의 장녕전 외규장각 등모든 기관에 불을 지르고 퇴각하여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과거속에 묻혔던 외규장각 의궤는 재불학자 박병선 박사에 의해 그존재와 행방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국내 학술단체와 정부가 중심이 되어 의궤의 반환을 추진하였고 1993년에는 1권이 먼저 돌아오게 되었다.

2010년서울에서 개최한 G20, 정상회의 중 대한민국 프랑스 양국 정상의 합의와 그 후속조처에 따라외규장각 의궤가 돌아오게 되었다.

이에 따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 왔던 외규장각 의궤 297권은 145년 만에 전부 다 고국으로 돌와 왔다.

국립박물관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지금 박물관 상성전시장에서 일부를 일반에게 공개해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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