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릉(조선 제11대중종의계비 문정왕후릉 사적 제 201호)
소재지 서울시 노원구 공릉2동화랑로 681
강릉과 이웃하고 있는 태능은 조선 제11대 중종의 계비(3번째 부인) 문정왕후(1501-1565)의 능이다.
문정왕후의 이력을 살펴보면 파산부원군 윤지임의 딸로 중종 12년(1517)에 왕비가 되었다.
왕후는 명종이 인종의 뒤를 이어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왕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린다.
8년동안 윤원형 등 왕후와 친척이되는 신하들이 권력을 잡고 중대한 나라일을 멋대로 좌지우지 하였다.
독실한 불교신자이기도 했던 왕후는 승려 보우를 신임하여 승려가 되는 시험인 승과를 설치하는 등 불교 진흥에 매진했다.
명종 20년(1565) 창덕궁 소덕당에서 일생을 마감 하였다.
정자각과참도,왕도
왕릉 정자각은 맞배지봉에 적갈색 방풍판이 치마 곡선처럼 배흘림을 이루어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멋이 있다.
비각
비석을 보호하는 집을 말하며 비석은 글씨를 새긴 부분이 비신이라하며 정면 끌씨를 표제라 한다.
뒷면은 글을 음기라하며 받침돌은 농대,머리에 집처럼 얹은 돌은 갓석이라고 한다.
릉정면 모습
석양,무인석,문인석
혼유석,장명등
곡장
국장 좌우 석물들
문인석과석야아래 멀리 정자각과 주변경관
문정황후의 기백이 살아숨쉬는 태릉,전무후무한 권력을 행사했던 희대의 여인 문정왕후 의 능호 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모여 훈련하는 선수촌과 총소리가 들리는 사격장이 들어선 이곳은 문정왕후의 기가 살아 숨쉬는 느낌이다.
태능을 답사하다보면 총소리가 들리는 맞은편에는 화랑대 육사가 자리잡고 있어 터가 보통 아상으로 센 곳이기도 하다.
백성이야 배곱아 죽던말던 불교신심이 돈독했던 문정왕후는 1565년 회암사 중창법회를 계획하게한다.
정난정에게 법회 행사를 준비 하라고 지시했지만 법회가 열리기전 그해 4월7일 조선의 측전무후 문정왕후는 65세로 일생을 마감한다.
조선 역사상 전후무후환 권세를 휘두른 왕비였던 문정왕후는 권력을 남용하다가 여기에 잠들어 우리를 역사속 인물로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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