遺産·書畫

오래된사진(덕수궁함령전 대한문,석조전,)

노을길 2010. 1. 24.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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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양위한 소어궁을 정종이 개서에 건립하여 덕수궁이라 이름 붙인것이 시초이다.

덕수궁은 본래 세조의 큰 아들인 의경세자 장의 큰아들,세조의 큰 ㅁ손자인 월산대군의 저택이 라한다.

월산대군의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이 성종으로 등극하면서 어머니 인 한씨도 입궐하게 되 어 월산대군 만이 거처하게되어다.

 

경운궁으로 불러다 고종황제가 1907년  왕위를 순종에게 양위한뒤 이 곳에 거처하면서 고종황제의 장수를 빈다는 뜻으로 덕수궁으로 부르게함


 

1936년 함령전 정문인 광명문 모습이다

 

고종황제의 국장당시  광명문 모습

 

현재의 광명문 모습

 

광명문에 있는 흥천사 종(보물 제1460호)보루각 자격루(국보229호) 신기,전기 전시하고있다.

 

1933년 함령전 모습

 

현재의 함령전 모습

 

 

 

1933년  석조전 모습

 

1938년6월 석조전 모습

 

1900년 기공 1909년 준공한  조선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며 구한말 총세무사 권유, 영국사람 하딩이 설계하고 그리스 건축을 조형했다.

르네상스 양식을 가미한 이른바 콜로니얼 스타일 건물로 18세기 영국 식민지의 이러곳에 많이 지어진 식민지 유산 건축물이다.

1950년 6,25 전쟁 중 석조 일부만 남기고 소실된것을 1953년 수리하여  국립현대 미술관으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따.


 

 현재의 석조전 모습이다

 

 중화문과 중화전

 

덕수궁의 중심건물인 중화전은 임금님이 하례를 받거나 국가 행사를 거행하던 곳이다.

중화문은 중화저의 정문이며 공무6년에 지었으나 1904년 불타 현재의 건물은 1906년에 다시 건축한 건물이다.

 

1968년 도로공사로  고립된 대한문

 

 

현재의 대한문

 

중화전 정면에 있어던것을 후에 동쪽으로 옮겼으며 1897년 고종이 멸례궁을  옛 이름인 경운궁으로 다시 부르게 했다.

1906년4월에  정문인 대안문을 수리하고 명칭도 대한문으로 바꾸고 수리하면서 겹처마에 단청,각마루에 양성하고 취두,용두,잡상을 얹었다

 

 환구단과 황궁우

 

 러시아 공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