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王陵石物)

왕릉따라 여행(김포장릉)

노을길 2010. 1. 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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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사적 제202호)

김포장릉 가보셨나요

 

 경기도 김포시풍무동 산141-1(김포시청뒤편)

 

장릉은 조선 16대의 인조의 부모인 원종(1580-1619)과 인헌왕후(1578-1626) 구씨를 모신 릉이다.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 정원군으로 용모가 출중하고 효성과 우애가 남달라 선조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한다.

큰아들 능양군(인조)인 인조반정으로 공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자 정원군은 대원군에 봉해졌다.

묘가 원,으로 추숭되어 홍경원이라했꼬,1627년 인조는 정원군묘를  김포현의 성산 언덕으로 천장했따.

 다시1632년다시 왕으로 추존하여 묘호를 원조으능호를 장릉이라고 했다.

인헌왕후는 아들(인조)이 즉위하자  연주부부인이 되었고 궁호를 계운궁이라 했다.

1626뇬 49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김포 성산언덕에  예장하고 원호를 육경원이라 했다.

홍경원을  이곳으로 다시 천장하면서 원호를 홍경원이라 합쳐 불렀다.

 

정원군의 추숭은 예송을 통해  왕의 권위와 위상을 강화하려는인조반정 공신 세력과 그 것을 펌하는 서인세력으로 대립.

이후  효종과 효종 비의 복상문제로 예송논쟁이 일어난 배경도 정원군의 예송이 빌미를 제공했다고 말하고 있다.

 

왕릉과왕궁은  그시대의 최고의 건축기술과 장인 솜씨를 발휘하는 곳이다.

인조 덕분에  김포시민들은 아름다운 숲과 자연히 숨시는 아름다운  문화재 장릉을 얻었다.

그기에다 연못까지 있으니 휴식공간이나 산림욕,조킹 코스로는 제격이다.

 

홍경원 때에 지어진 정자각이 낮고 축대가 왕릉에 비해 절반높이에 불과하다.

 다른 릉과 달리 경사진 창도를 통해 정자각으로 이러게 되어 정자각이 높은곳에  자리잡고 있다.

 수복방은 능을 과리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비각과 비석

 육경원 비석 받침둘이다

 

병풍석과 난간석이 없는 두 봉분앞에  혼유석이 각각  놓여있는  쌍릉이다.

 능침의 봉분이  대체로 평범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준다.

봉분은 지면과 맞닿은  부분에 아무런 조각이나 무늬도 새기지않는 호석을 두루고 있다.

이는 왕으로 추존되기 전에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곡장에서 바라본  봉분과 능침의 모습이다.

터무니 없이 뚱뚱하고 큰 문,무인석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준다

 좌면에 석마,문인무인 석이 바라보이고 멀리 망주석이 보인다

 능에서 내려다본 정자각과 비각 모습이 어런 모습으로 보인다.

 

 

정자각 서편에서 내려다본 어도 신도에서 홍살문 까지 모습이다

 정자각에서 바라본 홍살문 전경

 

 능침의 봉분이 정자각 어칸을 통해 보이는 장릉은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정자각 위 하늘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본다 김포비행장으로 착륙하려는 국내선 비행기이다.

 정자각 지봉에  나란히 놓인 장상들 모습,악기를 몰아내 준다고 한다

 

 장릉의 남쪽에는 연을 가득심어 놓은 연못이 있다.

왕릉에 연지가 조성된것은 여기 장릉과 동구릉,홍유릉 이 있다

연이 무성한 작은 방지원도, 뒷쪽중간에 있는 나무있는곳이 원도이다.

 

.방지원도는  저수지 역활을 한모양이며 큰 연못 아래에는 근래까지 논의 용수를 대기위하여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