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王陵石物)

고종황제에게 가다(홍릉)

노을길 2009. 11. 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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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에게 가다 ( 홍릉 사적사적 207호)

 

조선 제 26대 고종황제(1852-1919)와 명성황후(1851-1895) 민씨의 능입니다.

고종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둘쩨 아들로 철종이  후사가 없이 승하하자 익종의 비인 신정왕후 조씨의 지명으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고종은 조대비에게  수렴청정을, 홍선대원군에게 국정을 총괄하게 하였습니다

 

고종은 재위기간 동안 청,일,러,의 각축속에서 개화시책을 실시하면서 또한 군제를개혁하고 젊은 개화파로 구성된 신사유람단과 수신사를

일본에 파견하여 새로운 문물을 학습케 하였으며,1897년 자주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알리고자 대한제국을 선포하는 등 근대 자주국가를

만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렸으나 성공을 하지못하고, 1907년 을사조약 무효를 알리고자 네들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으나  일본과영국의 방해로 실페,이를 빌미로 이완용, 송병준,등 친일파 매국대신들과 일제에 의해 그해7월 20일 강제 퇴위 당하였다.

그후 1919년 1월21일 덕수궁에서 승하였습니다

 

 명성황후는 여성부원군 민치복의 딸로 1866년 왕비로 책봉되었고  1874 년 고종황제의 뒤를 이을 순종황제를 낳았습니다.

고종 친정 이후  명성황후는 정치적 실권으 장악했으며 임오군란 이후에는 일제의 간섭에서 벗어나기위해 친러정책을 펴서 정치적인 기반을 다지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외교정책에 불만을 품은 일본공사가 보낸 자객에 의해  1895년 10월8일 경북궁 건청궁에서 살해 당하였습니다

 

명성황후는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처음안장되었던 청량리에서 홍릉으로 옮겨 묻히었습니다.

. 

홍릉은 합장릉으로  병풍석과 난각석이 화려하게 봉분을 감싸고, 봉분 앞에는 상석,장명등,망주석,등이 있습니다.

침전은 정자각을 대신하여 일자형 건물로 신위를 봉안한 제전인데 역대 왕릉과는 달리 중국황제의  능제를 따라 조성하였습니다.

 

특히 홍살문에서 침전까지 길에 나란히 선 석물로 문인석,무인석,기린,코끼리,사자,해태,낙타,말 등이 배치 되어 있습니다.

 

봉분 앞에는 문인석 무인석과 석믈들이 모두 전으로 나가서 배치되어 침전의 웅장함에 비해 단출해 보입니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신문과 수라간 ,수복방,이 있으며 홍살문 밖으로 제실이 있습니다.

 

 

홍살문은 이곳이 신성한곳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중국황제의 능제에 따라 정자각 대신 침전에 세워진 최초의 능 입니다.

침전에 있는 능은 황제의 능인  홍릉과 유릉 뿐입니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합장된 릉 정면 모습입니다

 

곡장에서 내려다본 홍릉 풍경도 보입니다

 

 장명등

 

홍릉에서 내려다 본 침전과 비각 모습입니다.

 

 

 

 

 비각과 비석

 

 

제실

 

수복방

 

 

 침전의 계단아래  홍살문까지 참도가 깔려 있는데 세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좌우보다 한단높게 마련된길은

황제와 황후의 영혼이 다니는 길이고,좌우의 길은 사람이 다니는 길로 만들어  옿았습니다.

참도 좌우로 석물이 도열하듯 서있는데 침전 가까이에 문무인석,기린, 코끼리,사자,해태,낙타,말의 순서로 되어있습니다

각기 좌우 한쌍이나 마석만 2쌍을 이루며  서 있습니다.

 

 

 홍릉에 딸린재실, 잘보존되어 있어 관람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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