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궁 건청궁과 각문각지 향원정 따라하기
1873년, 고종은 경복궁 북쪽 동산정원인 녹산과 향원정 사이에 건청궁을 건립케 하고 명성황후와 기거 하였다.
건청궁의 건축양식은 양반가옥 살림집을 응용하여 사랑체(장안당)안체(곤녕함) 부속건물(복수당) 행각 등으로 구성되었다. 양반가옥 상한선인 90칸의 2.5배 되는 250칸이며 건청궁이 건립된지 3년,경복궁에 큰 불이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생활 공간을 옮겼다. 1885년 다시 건청궁으로 돌아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공관으로 피신할 때까지 10년 간 줄곳 이곳에서 지냈다. 건청궁은 미국의 에디슨 전기회사에서 발전를 설치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이 가설된 곳이며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곤녕함에서 일본인 자객에게 시해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경복궁의 건물들이 차레로 파괴되면서 건청궁은 1909년 철거되었다, 건청궁 철거 후 조선총독부미술관이 지어 졌고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하다가 1998년에 철거 되었다. 건청궁을 원래되로 복원하여 2007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일반에게 공개하고있다.
2017217 맑음 건청궁에 기거하던 고종이 1867년 건청궁 앞마당에 연못을 파고 증앙에 지은 정자이다. 경복궁네 건청궁 향원정은 건창궁과 향원정 사이에 다리를 놓아 취향교라 불렀다. 취향교는 6.25전쟁 때 파괴되고 지금의 다리는 1953년에 남쪽방향으로 새로 놓은 것이다. 향원졍은 정육각형에 장대석으로 기단 위에 육각형의 초석을 놓고 1.2층을 연결하는 육각기둥을 세웠다. 1층에는 평난간을,2층에는 계자난간을 두른 뒷마루가 놓여져 있다. 겹처마에 투녀 마루들이 모이는 지붕중앙에 절병롱을 얹어 단장을 했다 건청궁 곤녕합은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에게 시해된 역사적 비극의 장소이다. 초량문 장안당은 고종임금의처소이다 장안당 동쪽 사시향루는 사철향기가 풍긴다는 누각인데 앞쪽에 향원정이 있다.
정시합은 명성황의 처소, 이곳에서 민비시해사건(일본인 미우라,우법신등에게)이 일어남 정시합은 명성황의 처소, 이곳에서 민비시해사건(일본인 미우라,우법신등에게)이 일어남 장안당은 고종임금의처소이다 장안당은 고종임금의처소이다 추수부용루는 물속의 연꽃을 말한다 장안당 동쪽 사시향루는 사철향기가 풍긴다는 누각인데 앞쪽에 향원정이 있다. 필성문일원 건청궁 정문일원
경복궁 창건(1395) 때부터 있던 왕궁의 샘으로 옛날부터 물이 맑아서 음료수로 사용하였다한다. 글을새갠 우물두껑은 경복궁 중건(1868) 때 만든것이라고하며 샘에서 솟아난 물이 두번직각으로 꺽여서 연못으로 흘러들어 간다고 한다. 이것은 향원지에 드리워진 정자와꽃나무 그림자가 물결에 흔들리지않고 고요히 비치도록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꺽어지는 수로는 둥근 돌로 통로를 ㅁ반들어 흐르는 물이 더욱 생기를 띠게 함이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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