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王陵石物)

왕릉에가다 동구릉 숭릉

노을길 2016. 1. 2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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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에가다(동구릉 조선제18대현종 숭릉)

 

 

동구릉(현종과 명성왕후의 숭릉 사적제193호)

 

 

 

조선 현종18대 (1641-1674)과 비 명성왕후 김씨(1642-1683)의 쌍릉이다.

현종은효종(17대)의 맏아들로서 인조19년(1641)2월4일 탄생하였다.

1659년 5월9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즉위한 후1674년8월1남3녀를 두다.

현종은 젊은나이인 춘추34세로승하,그해 12월13일에 이곳에 모셔져다,

 

현종은 예론을 둘러싼 정쟁에 시달렸으나 조선왕조의 질서를 확립하였다,

복벌계획을  중단하고  훈련별대를 창설하는 등 군비 증강에 힘썼다.

국가제정을 안정시키기위해 대동법을 실시하였으며 동철활자를 주조하는데 힘썼다,

 

명성왕후 김씨는 청풍부원군 짐우명의 딸로 인조20년(1642)5월17일 탄생하다.

효종2년((1651)11월에 세자빈에책봉. 현종 1년(1659)왕비가 되었다.

숙종9년(1683)12월5일 창덕궁 저숭전에서 춘추 42세로 승하한다.

 병성왕후는 다음해 4월 5일 쌍릉으로 이곳에 모셔졌다

 

현종과 송시열

 

송시열은 산림 출신으로 효종의 부름을 받고 입궐했다.

효종의 극진한 존경과 예우를 받은 것은 북벌 때문이었다.

효종의 기대와 달리 송시열의 북벌론은 효종의 북벌 의지를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왔다.

송시열은 효종이 장자가 아니었음을 들어 현종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까지 보였다.

현종은 김우명의 딸인 명성왕후 김씨와의 사이에서 1남 3녀를 두었으며, 장자가 19대 왕 숙종이다.

장인인 김우명은 김육의 아들이고 송시열 시대에 의지할 곳은 외척인 청풍 김씨 집안 밖에 없었다

 

 

정자각

 

숭릉은  정자각이  팔작지붕으로 다른릉에서 볼 수없는 특이한 형태로 정면 3칸,측면 2칸에 익랑이 붙어있다,

 

 

 

 

 

홍살문공간 이곳은 신성한곳이라 알린다

 

 

숭릉은  정자각이  팔작지붕으로 다른릉에서 볼 수없는 특이한 형태로 정면 3칸,측면 2칸에 익랑이 붙어있다

 

 

 

숭릉은  정자각이  팔작 지붕이다

 

 

 다른릉에서 볼 수없는 특이한 형태로 정면 3칸,측면 2칸에 익랑이 붙어있더,

 

 

 

비각일원

 

 

비각

 

 

현종대왕 숭을의비문

 

 

능침공간

 

 

숭릉석물

 

 

조선 현종18대 (1641-1674)과 비 명성왕후 김씨(1642-1683)의 쌍릉이다.

 

 

 

릉주변공간

 

 

 

제실공간

 

 

정자각

 

 

숭릉은  정자각이  팔작지붕으로 다른릉에서 볼 수없는 특이한 형태로 정면 3칸,측면 2칸에 익랑이 붙어있다,

 

 

 

홍살문공간

 

관리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