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遺産(遺物·遺蹟)

을미사변이 일어난곳 경북궁건청궁과향원정

노을길 2013. 12. 6. 12:09
728x90
반응형

 

경북궁건청궁과향원정

 

 

건청궁

 

고종 내외가 아버지인 홍선대원군의  간섭에서 정치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1873년 건청궁을 궁궐 안 북쪽에 별도로 조성했다.

궁안에 궁인 건청궁은 침전인 곤녕합,옥호루와왕의사랑채인 장안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곤녕합은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시해된 역사적 비극의 장소이다.

 

 

건청궁일원

 

 

 

 

건청궁;

 

 

초양문;장안당과 곤녕합사이의 문

 

 

함광문;곤영합과남쪽 행각사이문

 

 

장안당전경

 

 

장안당은 고종의 일상및침전이다

 

 

추수부용루

 

 

추수부용루;가을 물속연꽃을 가르킨다.

 

 

필성문;건청궁 남쪽문

 

 

사시향루;사시사철 향이나는 누각이라는 뜻을담고있다.

 

 

초양문에서 바라본 장안당과 필성문이 보인다

 

 

정시각;곤녕합 북쪽에있는 침방

 

 

녹금당;복수당 서행각에있는 건물

 

 

복수당

 

 

 복수당과행각;수라간및 상궁들의 공간

 

 

 

 

곤녕합; 건청궁의 안채로 옥호루는 명성황후가 최초로 시해된 곳이다

 

 

 곤녕합

 

 

을미사변(명성황후시해사건)

 

 

궁내부 대신 이경직(李景稷)이 길을 막고 나서자 폭도들은 이경직을 총으로 사살하고는 高宗이 보는 앞에서 다시 칼로 무참히 베었다.

이어 왕비의 침전에서 여인들의 비명소리가 새벽공기를 가르고 울려 퍼졌다.

 (일제는 민비의 침전인 옥호루(玉壺樓)마져 부셔버렸다. 최근에 복원하였지만...)

궁녀 3명과 왕비 (閔妃 .. 시해사건 발생 2년 후인 1897년 명성황후로 추존됨)의 비명소리이었다.

폭도들은 궁녀와 왕세자 (李拓 .. 純宗의 본명)를 통해 피살자 중 한 사람이 왕비임을 확인하고는

왕비의 시신을 홑이불에 싸서 인근 녹원(鹿園 .. 人工으로 만든 山, 지금의 청와대 춘추관 자리) 솔밭에서 석유를 뿌리고 불에 태워버렸다.

 

옥호루; 곤녕합은 건청궁의 안채로 옥호루는 명성황후가 최초로 시해된 곳이다

 

 

 

향원정

 

 

향원정은 고종이 정치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1873년 건청궁을 경북궁 북쪽애 조성하면서 함께 만들었다.

향기가 멀리 궁내로 퍼져나간다는 향원정에 향기에 취한다는 취향교가 있는데 이다리는 원래 북쪽에 놓여 있었다.

보물 제 1761호로 지정된 향원지는 후원쪽에서 가장아름다운 곳으로 물위에 비치는 향원정의 그림자는 가히 환상적이다.

 

 

 

건청궁 후원인 향원정

 

 

후궁영역의 뒤 정원으로 만들어진 연못 안에는 원래 취로정이 있었는데 건청궁을 창건하면서 그자리에 향원정을 새로 지어 건청궁의 앞 정원이 되었다.

 

 

부정형의 연못에 둥근 섬을 만들고 육각형정자를 새웠으며 원래는 북쪽으로 다리를 놓아 건청궁과 연결했으나 현재는 남쪽으로 놓여있다.

 

 

향기가 멀리 궁내로 퍼져나간다는 향원정에 향기에 취한다는 취향교가 있는데 이다리는 원래 북쪽에 놓여 있었다.

 

 

보물 제 1761호로 지정된 향원지는 후원쪽에서 가장아름다운 곳으로 물위에 비치는 향원정의 그림자는 가히 환상적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