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遺産(遺物·遺蹟)

창덕궁낙선재(樂善齋)따라하기

노을길 2016. 11.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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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자여사가 마지막 살던곳 낙선재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은 왕의 행차나 중오 행사에 의례로 사용되고 신하들은 서쪽에 있는  금호문으로 드나들었다.

창건 당시 종묘가 창덕궁 앞에 자리잡고 있어 돈화문은 궁걸의  서쪽편에 놓여졌다.

궁궐의 중심부가 동쪽에 있었기 때문에 정문을 들어서면 동쪽으로 금천교을 건너 정전인 정전인 인정전 일원과 연결된다.

1609년 재건된 돈화문은 2층 누각형 목조건물로 아래층은 출입요이고 위층은 감시 전망용으로장대석 위에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모기둥이며

기둥 머리에 대들보를 걸었으며 익공을 끼웠다. 사용된 것이다.

앞에 넓은 월대를 두어 출입시의 대기공간으로 상용했고 원래는 여기서부터 종로까지 관청가가 조성되었다한다.

2016118 맑음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

 

 진선문

 

궁궐의 중심부가 동쪽에 있었기 때문에 정문을 들어서면 동쪽으로 금천교을 건너 정전인 정전인 인정전 일원과 연결된다.

 

 

인정전 일원 누각들

 

 

안쪽에서 바라본 진선문

 

 낙선재

창덕궁내에 있는 낙선재는 정면 6칸 측변 2칸의 단층 팔작 기와지붕에 누 마루가 있는 17칸 반의 규모이다.

장대석 위에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모기둥이며 기둥 머리에 대들보를 걸었으며 익공을 끼웠다.

누 마루 밑에는  아궁이를 내기 위해 단을 높혔고 아궁이의 벽에는 작은 돌들을 이리저리 붙여 놓았다.

원래 이곳은 상중에 왕후들이 소복차림으로 기거하던 곳이라  단청도 하지 않았다.

1963년 일본에서 돌아온 영친왕 이은,이방자 비가 이곳에서 거주하다 돌아 가셨다.

 

낙선재 정문 장락문

 

 

옛역사를 간지한 오래된 장락문 간판

 

 

창덕궁내에 있는 낙선재는 정면 6칸 측변 2칸의 단층 팔작 기와지붕에 누 마루가 있는 17칸 반의 규모이다.

 

 

장대석 위에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모기둥이며 기둥 머리에 대들보를 걸었으며 익공을 끼웠다.

 

 

 

뒤로는 석재로 쌓아 만든 화계(花階)가 있고 굴뚝과 각 단의 꽃나무이 있다.

 

 

낙선재 부속건물에 있는 창호

 

 

낙선재 부속건물에 있는 창호

 

 

누 마루 밑에는  아궁이를 내기 위해 단을 높혔고 아궁이의 벽에는 작은 돌들을 이리저리 붙여 놓았다.

 

 

낙선재 부속건물에 있는 창호

 

 

낙선재 부속건물에 있는 창호

 

 

낙선재 부속건물에 있는 창호

 

 

낙선재에 연접한 석복헌은 안사랑채로 정면 6칸, 측면 2칸이다

 

 

원래 이곳은 상중에 왕후들이 소복차림으로 기거하던 곳이라  단청도 하지 않았다.

 

 

낙선재 부속건물에 있는 창호

 

 

낙선재 뒤로 곱겜물든 단풍

 

 

뒤로는 석재로 쌓아 만든 화계(花階)가 있고 굴뚝과 각 단의 꽃나무이 있다.

 

 

 

낙선재의 부속건물

 

 

1963년 일본에서 돌아온 영친왕 이은,이방자 비가 이곳에서 거주하다 돌아 가셨다.

 

 

낙선재 앞마당에 곱게 익은 감나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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