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관파천(俄館播遷)슬픈역사가 있는 구러시아공사관 4
정동극장에서 약 100m 정도 올라가 이화여고 맞은편 골목으로 카나다,네들란드 등 대사관 따라 올라가다보면 구러시아공사관 이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의 현장인 구러시아공사관은 원형이 대부분 파괴됐지만 역사적 의미로 1977년9월 사적 제253호지정되었다.
정동공원내에 있고1885년 10월에 정동에 개설한 러시아공사관의 정식건물을 짓기위해 1890년 8월에 초석을 놓았다고 한다.
1890년(고종 27)에 스위스계 러시아인 사바틴이 설계하고 르네상스식 건물로 러시아공사관으로 사용했다.
벽돌조 2층의 본관은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고 현재는 3층규모의 탑만이 남아 있다.
탑의 1층은 본관과 이어졌고 2층에는 창을 하나만 내어 단순하게 지은 건물이다.
3층에는 네 면에 반원 아치형의 창을 냈고 지붕은 삼각형 페디먼트(pediment.)로 구성했다.
현재의 탑의 동북쪽에 있던 지하 밀실의 일부가 발굴되었는데 지하 밀실은 비밀통로로 경운궁(덕수궁)까지 연결되었다고 한다.
러시아공사관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1896년(건양1)2월 1일부터 고종이세자(순조)와함께 1년간 머물던 곳이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이란?"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1896년(건양1)2월 1일부터 고종이세자(순조)와함께 1년간 머물게 된 사건을 말한다.
고종은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1896년2월11일,
친러 세력과 러시아공사의 공모하에궁궐을 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다.
갑오개혁 이후인 1894년 친일 개화파 내각이 무너지고 친러파가 내각을 장악한다.
고종이 러시아공관에 머무는 동안 조선 정부의 인사와정책은 러시아공사가 좌지우지한다.
1년 동안 러시아공관에 머무는 동안 러시아를 필두로 구미열강들이 왕실을 보호해 준다.
이를 빌미로 각종 이권과 경제적,문화적 이권들을 약탈하는 슬픈역시가 있는 곳이다
러시구공사관으로 들어가보자
정동길을 걸어가다보면 복원된 이화여고 교내에 있는 이화학당이 보이고
이화여고 사주문과 이화여고 건물 맞은편에 있다.
바로 건너편 골목으로 곧장 올라가면 된다.
대사관이 줄비한 골목으로 올라가면 정동공원내에 있는 구 러시아공사관 건물이 나온다.
6.25정쟁 때 대부분 손실되고 지하층과 답옥 부분만 남아 있다
서재필 주재하의 독립협회가 결성된 고난의 역사적 증인이 된 건물이다.
6.25사변으로 대부분 파괴된 건물은 지하층과 3층탑옥부분만 남아있다.
당시 이곳 부근 한옥에서는 프랑스에서 온 수녀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카톨릭 수녀회비
이곳 러시아 구공사관은 당시 국제정세에 흽쓸려
자주 정변을 격어야 했던 조선의 현실이 드러나 있다.
벽돌로 지어진 2층으로 한족에 탑옥이 있고 사면에
무지개모양의 2연창문과 박공머리를 둔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6.25정쟁 때 대부분 손실되고 지하층과 답옥 부분만 남아 있다
안내판,구러시아공사관의 이력서라 말해야 하나?
탑의 1층은 본관과 이어졌고 2층에는 창을 하나만 내어 단순하게 지은 건물이다
옥탑측면
정동공원은 구러시아공사관이 자리잡고 있던 곳이며
주위에 많은 한옥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1896년 2월에서 1897년 2월까지 고종과 세자(순종)가 피신하여 있던 장소이다.
옥탑측면
아관파천의 장소인 구러시아공사관은 원형이 대부분 파괴됐지만
역사적 의미로 1977년9월 사적 제253호지정되었다.
구러시아공사관을 탐방하고 내려오는길에 카나다대사관 인뜻....
건너편 이화여고 정문 그리고 이화학당과 이화여고 사주문을 바라보며 대한문 방향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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