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 (사적 제32호)
서울시 서대문구 의주로 247 현저동 101번지
독립문은 원래 종로구 교복동에 있었던것을 1973년 현제의 장소인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공원 안으로 이전 하였다 합니다.
독립문은 1896년 독립협회가 우리의 독립을 선어하기 위해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 자리에 전 백성을 상대로 모금운동을하여 세웠다 합니다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 떠서 서재필이 기초한것을 독일공사관의 스위스 사람이 석계를 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공사는 건축가 심의석이 담당하고 건설인부는 주로 중국인 노무자를 고용해서 공사를 진행 했다고 합니다.
주로 화강암을 사용하였는데 구조는 중앙에 홍예문을 만들었고 꼭대기 까지 가는 돌계단이 있었고 문 앞에는 두 돌기둥이 있었다고 합니다
1979년 성산대로를 새로 만들면서 독립문이 있었떤 자리에서 서북방향으로 약 70m 이전하여 복원 하였고 엣자리에는 독립문지라는 표지판을 묻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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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천장
독립선언 기념탑
독립관
독립관은 조선시대 중국사신들의 영접연과 전송연을 배풀던 영빈관의 하나인 모화관 건물을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서재필이 발의하고 독립협회에서 주도하여 개수후, 독립관으로 개칭하고 이곳에서
애국토론회를 개최하여 자주,민권,자강,사상을 고취하는 장소로 사용 하였습니다.
독립문과 함께 족립사상을 표현하였으나 일제에 의하여 철거 되었으나 1995년12월28일 부터 다음해
12월 31일 선열들의 위패봉안밑 전시실로 사용하려고 서울시에서 재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송재 서재필선생 상
송재 서재필선생 상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서재필 선생은 개화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입니다.
선생은 1896년 4월7일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독립신문)을 발간하였고 윤치호,이상재 등 과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종래 중국을 사대하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그자리에 국민의 성금으로
한국 독립의 상징으로서 독립문을 세웠으며 종래의 모화관을 개수하여 독립관으로 고치고,
독립협회와 집회장소로 그리고 사무실로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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